K-컬처 장규호 기자 | 세상에는 읽는 시가 있고, 바라보는 시가 있다. 그리고 그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예술이 있다. 바로 K-그라피다.
손명주 작가의 작품 「첫사랑」은 시인 최우영의 시를 단순히 옮겨 적은 작품이 아니다. 글씨는 붓끝에서 춤을 추고, 시는 화면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을 읽기보다 먼저 느끼게 된다.
'첫사랑.'
단 두 글자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굵고 거침없는 붓놀림은 누군가를 처음 사랑했을 때의 심장 박동처럼 요동친다. 한 번에 밀어붙인 먹빛에는 망설임이 없고, 번져 나가는 여백에는 아직 말하지 못한 감정이 스며 있다.
왼편에는 시가 세로로 흐른다. "손끝으로 아주 살짝 찔러 본 건데"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아주 작은 떨림 하나였는데 마음은 이미 무너지고, 살짝 흔든 가지였는데 추억은 우수수 떨어진다.
손명주 작가는 이 시를 글씨로 쓰지 않았다. 감정으로 그렸다. 오른쪽에 서 있는 가로등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밤길을 비추는 불빛처럼 첫사랑은 오래전 끝났어도 기억은 아직 우리 마음을 비춘다. 사랑은 떠나도, 그 사랑을 기억하는 빛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분홍빛으로 물든 배경은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같기도 하고, 수줍게 붉어진 마음 같기도 하다. 먹과 분홍의 대비는 이성과 감성, 기억과 현재를 동시에 품어낸다. 이것이 바로 K-그라피가 가진 힘이다.
글씨는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전하는 예술이 된다. 한 획은 숨결이 되고, 한 점은 눈물이 되며, 여백은 침묵이 아니라 가장 긴 울림이 된다.
세계평화미술대전이 K-그라피를 독립된 예술 장르로 조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붓은 한글을 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한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되며, 시는 다시 세계인의 마음속 언어가 된다.
손명주 작가의 「첫사랑」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가장 순수했던 시간을 불러낸다.
첫사랑은 끝났지만, 첫사랑의 마음은 끝나지 않는다. 좋은 예술은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시간을 다시 걸어오게 만든다.
오늘도 어느 골목의 가로등 아래, 누군가는 첫사랑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장 아름답게 써 내려가는 이름, 그것이 바로 K-그라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