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이성준 기자 | 모란은 늘 부귀의 상징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연희 작가의 '괴석모란'에서 모란은 단순한 풍요의 꽃이 아니다. 이 꽃은 견딘 자리에서 피어난 결과다. 작품 아래를 차지한 괴석들은 매끈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바람과 비, 시간을 견뎌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위에 모란이 선다. 화려함은 위에서 오지 않고, 아래의 무게에서 자라난다. 이 작품에서 괴석은 배경이 아니라 주체다. 뒤틀린 돌의 윤곽은 삶의 굴곡을 닮았고, 모란의 줄기는 그 굴곡을 피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틈을 비집고 올라와 꽃을 맺는다. 이는 “잘 갖춰진 자리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버틴 시간 위에 얹힌 성취를 말한다. 꽃의 색 또한 의미심장하다. 자주와 황금의 대비는 과시가 아닌 축적의 색이다. 같은 모란이 반복되지만 단조롭지 않은 이유는, 각 꽃이 서 있는 돌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반복은 획일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리듬을 드러낸다. 부귀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각자의 사연을 지닌 여러 얼굴로 존재한다. k-민화의 미덕은 언제나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 데 있다. 이연희 작가의 '괴석모란'은 고난을 지워버리지 않는다. 대신 고난을 지지대로 삼는다. 그
K-컬처 이성준 기자 | 반차도는 행렬의 그림이지만, 실은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린 지도다. 김선희 작가 의 '왕조 왕세자 책례반차도권'은 화려한 의식의 기록을 넘어, 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정렬하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이 긴 두루마리 속에서 주인공은 단 한 사람이 아니다. 깃발과 의장, 악기와 기물, 보폭을 맞춘 사람들 하나하나가 주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속도, 역할을 넘지 않는 선, 그 절제가 이 행렬의 품격을 만든다. 책례는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질서의 확인이다. 김선희 작가는 반차도의 미덕인 ‘거리감’을 정확히 살린다. 인물들은 작게 그려지지만, 관계는 크게 보인다. 왕세자의 자리는 중앙이되 과장되지 않고, 의장물은 권위를 드러내되 폭력적이지 않다. 이 그림에서 힘은 소리치지 않는다. 정확히 제자리를 지킬 때 힘은 가장 크다는 사실을 화면이 증명한다. 색채와 배열은 반복을 통해 안정감을 만든다. 같은 옷, 같은 기물, 같은 간격의 행렬은 획일이 아니라 신뢰의 리듬이다.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만 즉위는 정당성을 얻는다. 그래서 이 반차도는 축제가 아니라, 국가의 약속문처럼 읽힌
K-컬처 이성준 기자 | 칸초아리나는 벨라루스에서 온 유학생으로, 한국에 머무는 동안 K-민화를 익히고 배우며 전통 회화가 지닌 상징과 정신성을 자신의 조형 언어로 흡수해 온 작가다. 그가 그린 k-민화는 늘 큰 것을 그리면서도, 진실은 작은 곳에 숨겨왔다. '도마뱀 나들이'는 그 전통을 가장 섬세한 방식으로 이어간다. 작품 속의 주인공은 위엄도 상징도 아닌, 일상 속의 작은 생명이다. 그러나 이 작음은 미약함이 아니라, 세계를 지탱하는 정확한 비중으로 제시된다. 괴석 위에 올라선 도마뱀의 자세는 느긋하고 단정하다. 포식도 도주도 아닌, 관찰의 태도다. 눈은 크게 열려 있으되 공격적이지 않고, 몸은 길게 늘어졌으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안정감은 자연과의 거리 조절에서 나온다. 도마뱀은 바위를 정복하지도, 꽃을 짓밟지도 않는다. 그저 그 사이에 정확히 놓여 있다. 괴석의 절단된 면과 그 틈에서 피어난 꽃들은 대비를 이룬다. 거침과 부드러움, 무게와 향기. 그러나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증명한다. 상처 난 돌이 있어 꽃이 더 선명해지고, 꽃의 존재로 돌의 거칠음이 의미를 얻는다. 이는 자연의 윤리와 공존은 타협이 아니라 배치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K-컬처 이성준 기자 | 유성만 작가의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속도가 느려진다. 유성만 작가의 '休휴식'은 무엇을 보여주기보다, 보는 이를 잠시 내려놓게 만드는 그림이다. 숲은 빽빽하지만 답답하지 않다. 나무들은 서로 기대지 않으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서 있고, 화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스며 나온다. 이 빛은 태양도, 인공의 조명도 아니다. 마치 숲 자체가 숨을 쉬며 내뿜는 호흡처럼 느껴진다. 쉼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존재가 제 자리를 회복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태임을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한다. 화면 속 작은 새 한 마리는 이 숲이 정지된 공간이 아님을 알려준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생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이 ‘휴休’는 정적이 아니다. 한자 ‘休’가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 쉼을 얻는 형상인 것처럼, 이 그림의 쉼은 자연에 몸을 맡긴 채 다시 살아갈 힘을 고르는 과정이다. 유성만 작가의 숲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절제된 색과 반복되는 수직의 리듬은 마음의 파동을 가라앉힌다.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쉼은 종종 소비의 형태를 띠지만, 이 작품은 말한다. 진짜 쉼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 상태, 그저 존재로
K-컬처 이성준 기자 | 이 그림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소박한 민화’라는 고정관념에 머물 수 없다. 한현숙의 작가의 '비파공작'은 민화가 지닌 길상성에 당당한 아름다움과 존재의 위엄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작품을 가득 채운 공작은 숨기지 않는다.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공작의 자세는 과시가 아니라 자각이다. 자신의 빛을 아는 존재만이 이토록 고요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공작은 예로부터 부귀, 영화, 덕성을 상징하는 길상 조류였지만, 이 작품에서 공작은 상징을 넘어 완성된 존재의 태도로 등장한다. 비파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는 풍요와 다산, 결실의 의미를 품고 있다. 이 풍경은 우연한 장식이 아니다. 비파는 긴 시간의 축적 끝에 맺히는 열매다. 즉, 이 그림의 화려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공작의 찬란한 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색채의 운용은 절제 속의 화려함이다. 녹청과 군청, 황금빛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살린다. 이는 K-민화가 지닌 미덕, 즉 ‘조화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결과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장식적이지만 가볍지 않다. '비파공작'은 말한다. 진짜 복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
K-컬처 전득준 기자 | 대한민국미술대전은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미술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며 공정성과 권위를 지켜온 대한민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공모전으로 한국미술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미술계 인재양성 및 발굴을 하는데 그 목적을 하고 있다. 한국미술협회(이사장 이두성)는 2025년 12월 25일부터 26일까지 진행한 최종 심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4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부문 수상자를 선정하고 수상작을 2026년 1월 5일부터 11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화랑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이번 비구상부문은 총 출품수 335점이 출품이 되어 최우수상 1점, 우수상 7점, 서울특별시장상 1상, 서울시의회의장상 4점, 평론가상 1점, 특선 14점, 입선 63점 총 91점이 수상작으로 선정 되었으며, 최우수상의 영예는 변선영의 ‘자유’가 선정되었다.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이두성은 인사말에서 “비구상미술은 형식의 한계를 넘어 사유와 감각, 창조적 실험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넓혀 온 중요한 영역입니다. 오늘 수상의 영예를 안으신 작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 대전에 참여해 주신 모든 작가 여러분의 열정과
K-컬처 이성준 기자 | 금강산은 늘 하나의 질문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봉우리를 한 화면에 담을 것인가. 그리고 더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그 산을 어떻게 오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볼 것인가. 하미숙 작가의 '정선의 금강전도'는 이 두 질문에 동시에 답한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정수인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충실히 존중하면서도, 모사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을 채운 수많은 봉우리들은 위계 없이 솟아오르며, 산은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집합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에서 산은 배경이 아니다. 각각의 봉우리는 하나의 인격처럼 서 있고, 능선은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처럼 겹쳐진다. 붓의 반복은 노동에 가깝고, 색의 절제는 묵언의 수행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본다’기보다 ‘들어간다’는 감각을 준다. 관람자는 어느새 금강산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금강산 속을 걷는 존재가 된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실경을 통한 세계 인식’이었다면, 하미숙 작가의 금강전도는 ‘기억을 통한 세계 복원’이다. 실제로 갈 수 없는 산,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산. 이 그림은 분단과 단절의 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산은 사라졌는가, 아니면 우리가
K-컬처 이성준 기자 | 봉황은 함부로 날지 않는다. 태평성대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면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봉황은 k-민화에서 ‘권력’보다 먼저 품격의 상징으로 그려져 왔다. 김민주 작가의 '봉황도'는 이 오래된 상징을 오늘의 언어로 조용히 번역해낸 작품이다. 이 봉황은 위엄으로 군림하지 않는다. 날개를 크게 펼치지 않고, 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대신 바위 위에 내려앉아 주변의 생명을 바라본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며, 곤충과 새들이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는 가운데 봉황은 중심에 있으되 중심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그림의 첫 번째 미덕이다. 작품의 구성은 위로 치솟기보다 아래로 뿌리내린 질서를 따른다. 바위는 흔들림 없는 토대처럼 봉황을 받치고, 그 위에 피어난 모란과 매화는 계절과 덕목을 동시에 상징한다. 모란의 풍요와 매화의 절개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봉황은 화려함 위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절제된 풍요 위에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봉황의 깃털은 특히 인상적이다. 녹청과 주홍, 백색과 금빛이 겹겹이 쌓였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이는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오랜 수행 끝에 도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