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이길주 기자 | 이 그림은 그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덜어낸 끝에 남은 것이다. 굵은 붓선으로 쓰인 한 글자, 休(쉴 휴), 그러나 이 ‘휴’는 단순한 한자가 아니다.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는 형상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에게 기대는 순간을 형상화한 하나의 사유思惟다. 화면 오른쪽의 형상은 승복을 입은 스님도, 특정 인물도 아니다. 무릎을 접고 허리를 세운 이 실루엣은 명상하는 ‘존재 그 자체’다. 얼굴도, 표정도, 장식도 없다. 오직 앉아 있는 선線만 있다. 왼쪽의 ‘人’은 곧게 서 있지만 긴장하지 않고, ‘木’은 뿌리도 잎도 없이 하나의 기둥처럼 서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람은 앉아 있다. 이 작품에서 ‘休’는 쓰인 글자가 아니라, 앉은 자세다. 글자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게 하는 공간이 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캘리그래피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K-그라피(K-Graphy)라 부른다. 서구의 Calligraphy가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라면, K-그라피는 사유가 머무는 문자, 수행이 깃든 선이다. 붓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멈춤, 획의 힘보다 중요한 것은 여백, 완성보다 중요한 것은 머무는 시간이다. 이 ‘休휴’는 장식용 문자가 아니다
K-컬처 강경희 기자 | 몽골 울란바토르 동쪽 초원, 천진벌덕(Цонжинболдог)이곳에 서면 한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한 문명의 시간 앞에 서게 된다. 바로 칭기스칸 은마동상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말 위의 칭기스칸은 멈춰 서 있지만, 그의 시선은 지금도 끝없는 초원을 가로지른다. 이 동상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다. 몽골인에게는 민족의 근원이며, 세계사에서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길로 엮어낸 거대한 흐름의 상징이다. 가을의 천진벌덕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 않고, 초원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말발굽 소리조차 부드럽게 삼킨다. 그 위에 선 은마동상은 제국의 ‘확장’을 말하는 듯하다. 정복과 이동, 길과 길의 만남. 가을의 색은 칭기스칸을 정복자로, 개척자로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겨울, 모든 것이 달라진다. 흰 눈이 초원을 덮고,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질 때, 은마동상은 침묵의 상징이 된다. 차가운 은빛 위에 내려앉은 눈은 화려함을 지우고, 남는 것은 결기와 고독이다. 이때의 칭기스칸은 정복자가 아니라, 혹독한 자연과 운명을 견뎌낸 ‘존재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가을과 겨울의 대비는 곧 몽골 역사 그 자체다. 풍요와 이동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