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이길주 기자 | 감성 먹빛이 스며든 여백 위로 소박한 문장이 피어난다. 강경희 캘리그라피 작가의 이번 작품은 일상의 언어를 예술적 정서로 승화시키는 그녀 특유의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업이다. 화면 가득 흐르는 “고마워요, 그냥 엄마니까”라는 문장은 단순한 문구를 넘어, 글자 자체가 감정의 숨결을 품은 하나의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강 작가는 문장을 정형화된 서체에 가두지 않는다. 먹의 농담과 번짐을 그대로 살려 글자마다 다른 호흡을 부여하며, 획의 굴곡과 잉크의 번짐은 마치 말하지 못한 오랜 마음이 조심스레 드러나는 순간을 시각화한 듯하다. 이는 전통 서예의 수묵 표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글자’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강경희 작가의 대표적 표현 방식이다.
작품의 구성 또한 눈길을 끈다. 화면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 서로 다른 문장을 배치한 구성은 부모와 자식, 혹은 누군가를 향한 두 개의 마음이 서로 마주보는 형국을 만든다.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머금은 ‘관계의 자리’로 기능한다. 강 작가는 이 여백을 통해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전달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오게 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고마움’이라는 단어가 지닌 정서적 무게다. 작가는 “그냥 엄마니까”, “그냥 네가 있어서”라는 일상의 고백을 조형 언어로 번역해, 가장 단순한 문장이 가장 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이는 단순한 캘리그라피가 아니라,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시각화한 감성 회화에 가깝다.
강경희 작가는 그동안 한국적 감성의 서체 연구와 수묵 기반의 실험적 캘리그라피로 주목받아 왔다. 그녀의 작업은 글씨를 ‘쓰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행위’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캘리그라피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언어와 감정, 여백과 먹빛이 조화롭게 맞물리며 따뜻한 울림을 만든다.
먹빛은 말라가지만, 고마움은 번져간다. 강경희 작가의 글씨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