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흰 눈 위의 제국, 가을 위의 초원”
K-컬처 강경희 기자 | 몽골 울란바토르 동쪽 초원, 천진벌덕(Цонжинболдог)이곳에 서면 한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한 문명의 시간 앞에 서게 된다. 바로 칭기스칸 은마동상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말 위의 칭기스칸은 멈춰 서 있지만, 그의 시선은 지금도 끝없는 초원을 가로지른다. 이 동상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다. 몽골인에게는 민족의 근원이며, 세계사에서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길로 엮어낸 거대한 흐름의 상징이다. 가을의 천진벌덕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 않고, 초원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말발굽 소리조차 부드럽게 삼킨다. 그 위에 선 은마동상은 제국의 ‘확장’을 말하는 듯하다. 정복과 이동, 길과 길의 만남. 가을의 색은 칭기스칸을 정복자로, 개척자로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겨울, 모든 것이 달라진다. 흰 눈이 초원을 덮고,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질 때, 은마동상은 침묵의 상징이 된다. 차가운 은빛 위에 내려앉은 눈은 화려함을 지우고, 남는 것은 결기와 고독이다. 이때의 칭기스칸은 정복자가 아니라, 혹독한 자연과 운명을 견뎌낸 ‘존재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가을과 겨울의 대비는 곧 몽골 역사 그 자체다. 풍요와 이동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