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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아트

[담화총사 칼럼] 왕실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조혜선 작가의〈궁중연화 문 앞에서〉

- 조혜선 화풍의 정점 궁중과 민화의 조화
- ‘문’이라는 장치가 가진 서사성
- 한국적 정서와 장인정신의 결합

K-컬처 장규호 기자 |  화려한 궁중의 문 앞에 선 여인이 등 뒤로 고요한 긴장과 장엄한 기운을 드러낸다. 조혜선 작가의 작품 〈궁중연화〉(135×70cm)는 전통 궁중 회화·복식·공예의 미학을 민화적 조형 감각으로 재구성한 대작으로, 왕실의 시간과 여인의 순간적 감정이 한 화면에 응축된 작품이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붉은 예복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넓게 퍼지는 치맛자락의 곡선, 그 위를 수놓은 모란·연꽃·봉황 문양은 민화에서 길상과 번영을 상징한다. 조혜선 작가는 전통 문양을 단순히 장식으로 처리하지 않고, 인물의 운명과 내면을 암시하는 상징적 언어로 재해석해냄으로써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화면 상단 배경에 금니金泥로 그려진 모란은 왕실의 품격과 권위를 상징한다. 이는 조선 궁중 장식의 전형을 충실히 계승한 표현으로, 작가는 문양 하나, 선 하나에서도 정교한 금박과 세필의 기량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작품의 중심에는 붉은 궁중 문이 있다. 대문에는 전통 창살 무늬와 길상적 문양이 빼곡히 채워져 있으며, 정교한 선묘線描와 금속 장석 표현은 실제 궁중 공예품을 방불케 한다.

 

이 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 문을 열기 직전의 여인, 그리고 문 너머의 세계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의 핵심 장치다.

 

문은 ‘새로운 운명’을 의미하며, 여인의 뒷모습은 ‘결정의 순간’을 상징한다. 기품 있는 복식은 그녀의 신분과 무게를 말해준다. 관람자는 마치 그녀의 눈을 대신해 문 너머를 상상하게 되고, 그 순간 작품은 ‘정지된 그림’에서 ‘열린 이야기’로 확장된다.

 

조혜선 작가는 전통 궁중미술의 화려함과 민화가 지닌 서민적 정서를 한 화면에 결합하는 독특한 화풍을 가진 작가다.

 

궁중의 상징성과 엄격한 장식미를 살리면서도, 민화 특유의 과감한 색채, 밝고 따뜻한 정서, 상징 중심의 해석을 현대적으로 결합해낸다. 그 결과, 작품은 궁중회화의 화려함뿐 아니라 민중의 염원과 따뜻한 생명력까지 함께 담아내는 새로운 미감을 생성한다.

 

조혜선 작가의 인물은 정면을 향하지 않는다. 등을 보인 채 문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궁중의 규율을 따르는 존재’를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만의 선택과 마음, 고뇌를 암시한다. 그 뒷모습에 담긴 침묵은 관람자로 하여금 “그녀는 무엇을 앞두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질문이 바로 조혜선 작가 작품의 힘이다. 그림은 화려함을 넘어 ‘이야기하는 미술’로 확장된다.

 

이 작품의 매력은 단순한 시각적 화려함이 아니다. 조혜선 작가는 한복, 가체, 노리개, 금박 문양, 자수 표현 등 궁중 복식의 디테일을 철저히 연구하고, 전통 문양의 의미를 면밀히 탐구해 이를 화면에 정교하게 반영했다. 전통미술의 원형을 깊이 이해한 작가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장인적 고증과 회화적 창의성의 결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혜선 작가의 〈궁중연화〉는 단순한 궁중 재현이 아니다. 그 문을 열고 나설 여인의 등에 한국 여성의 역사, 고귀함, 선택, 그리고 운명이 담겨 있다. 그 아름다움은 화려함을 넘어 고요한 장엄, 그리고 깊은 서사의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