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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김선희 작가의 '왕조 왕세자 책례반차도권'으로 읽는" K-민화의 국가 미학"

- 한 사람의 즉위가 아니라, 질서의 행진

K-컬처 이성준 기자 | 반차도는 행렬의 그림이지만, 실은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린 지도다. 김선희 작가 의 '왕조 왕세자 책례반차도권'은 화려한 의식의 기록을 넘어, 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정렬하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이 긴 두루마리 속에서 주인공은 단 한 사람이 아니다. 깃발과 의장, 악기와 기물, 보폭을 맞춘 사람들 하나하나가 주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속도, 역할을 넘지 않는 선, 그 절제가 이 행렬의 품격을 만든다. 책례는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질서의 확인이다.

 

김선희 작가는 반차도의 미덕인 ‘거리감’을 정확히 살린다. 인물들은 작게 그려지지만, 관계는 크게 보인다. 왕세자의 자리는 중앙이되 과장되지 않고, 의장물은 권위를 드러내되 폭력적이지 않다. 이 그림에서 힘은 소리치지 않는다. 정확히 제자리를 지킬 때 힘은 가장 크다는 사실을 화면이 증명한다.

 

색채와 배열은 반복을 통해 안정감을 만든다. 같은 옷, 같은 기물, 같은 간격의 행렬은 획일이 아니라 신뢰의 리듬이다.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만 즉위는 정당성을 얻는다. 그래서 이 반차도는 축제가 아니라, 국가의 약속문처럼 읽힌다.

 

오늘의 사회는 리더십을 개인의 카리스마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왕조 왕세자 책례반차도권'은 다른 답을 내놓는다.


리더는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질서를 끌어올 수 있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 질서는 혼자 만들 수 없다고.

 

이 그림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 함께 걸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보폭을 맞추고, 역할을 지키며, 다음을 위해 길을 내줄 수 있는가.

 

반차도의 긴 행렬은 과거가 아니다.
오늘에도 필요한 국가의 걸음걸이다.

 

작가 노트 | 김선희 

'왕조 왕세자 책례반차도권'은 왕세자 책례의 행렬을 통해 개인의 즉위가 아닌, 국가 질서의 작동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반복과 간격, 역할의 배치를 중시하여 의식의 품격과 공동체의 합의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 그림은 권위의 과시가 아니라 질서의 신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