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강경희 기자 | 연꽃은 늘 물 위에 있지만, 그 뿌리는 가장 낮은 곳에 닿아 있다. 이윤희 작가의 '연화도'는 바로 그 낮음에서 시작되는 상승을 화면 전체의 리듬으로 펼쳐 보인다. 세로로 길게 뻗은 화면에는 연잎과 연꽃이 층층이 배치되고, 그 꼭대기에는 물총새 한 쌍이 날아든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삶의 단계와 마음의 이동 경로를 은유적으로 그린 하나의 서사다. 연꽃은 멈추지 않고 피어난다. 이 작품 속 연꽃은 만개와 봉오리, 그리고 막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까지를 모두 품고 있다. 피어 있음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듯, 연꽃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산다. 이것이 민화가 말하는 시간의 윤리다. 앞선 꽃이 뒤의 꽃을 가리지 않고, 아래의 봉오리가 위를 시기하지 않는다. 이윤희 작가는 이 질서를 과장하지 않는다. 담담한 선과 절제된 채색으로, 연꽃이 지닌 자기 완결의 품격을 드러낼 뿐이다. 물총새, 고요를 깨우는 의지 연화도에서 물총새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정확히 목표를 향해 급강하하는 이 새는 결단과 집중의 상징이다. 연꽃 위를 스쳐 날아드는 물총새의 움직임은, 고요한 화면에 긴장을 부여하며 말한다.
K-컬처 강경희 기자 | 한자 ‘休’휴는 단순한 쉼의 기호가 아니다.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순간, 그 형상에는 삶의 리듬과 존재의 회복이 함께 담겨 있다. 이번 작품은 이 ‘休’의 의미를 문자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글자는 해체되고, 획은 몸이 된다. ‘人’은 더 이상 읽히는 대상이 아니라 서 있는 존재가 되고, ‘木’은 배경이 아니라 세계를 지탱하는 축으로 작동한다. 검은 먹은 사람의 자세로 변주되고, 그 아래를 감싸 흐르는 색의 혁필은 쉼이 멈춤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에너지의 축적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쉼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운동이며, 호흡이자 전환이다. 몸은 앉아 있으나, 색은 흐르고 먹은 숨을 쉰다. 붉은색은 삶의 온도, 청록은 시간과 호흡, 금빛은 정신의 각성을 상징한다. 한 획은 평면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삶처럼 구부러지고, 흔들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은 분명히 말한다. 획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붓 문화를 ‘Calligraphy’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지만, 과연 한글의 획, 한자의 정신, 먹의 철학, 여백의 사유가 서구의 개
K-컬처 강경희 기자 | 연꽃은 늘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그 꽃잎에는 한 점의 탁함도 남기지 않는다. 서필교작가의 “연화도”는 바로 이 연꽃의 속성 위에 반야심경의 문장을 얹는다. 꽃은 그림으로 피어나고, 경전은 문자로 머문다. 그러나 이 화면에서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글씨는 장식이 아니라 호흡이며, 그림은 설명이 아니라 수행의 자리다. 작품의 상단을 채운 반야심경의 문장은 금빛에 가까운 담담한 색으로 화면을 가로지른다. 과도한 강조도, 의도적인 장엄함도 없다. 대신 일정한 간격과 리듬으로 배치된 글자들은 마치 염송의 호흡처럼 차분히 이어진다. 이는 읽히기 위한 문장이기보다 머물기 위한 문장이다. 관람자는 의미를 해독하기보다, 시선과 마음을 잠시 멈추게 된다. 화면 하단에 자리한 연꽃 군락은 전통 민화의 어법을 따르되, 지나친 상징의 과시를 피한다. 잎은 서로 겹치며 생장의 질서를 만들고, 꽃은 피고 지는 시간을 암시한다. 색채는 맑고 절제되어 있으며, 붓질은 빠르지 않다. 이는 ‘보여주기’의 회화가 아니라 기다림의 회화다. 연꽃이 피는 속도와, 글씨가 스며드는 시간을 동일한 호흡으로 맞추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반야심경은 교리를 설명하지 않는다. “색즉시공
K-컬처 강경희 기자 | 김나은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이 문장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 된다. 화선지 위에 유채가 스며들고, 먹의 호흡 위로 색이 겹쳐지는 순간, 전통은 과거의 형식이 아닌 현재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김나은 작가는 ‘화선유채서화’라는 융합 기법을 통해 동양 서화의 정신과 서양 유채의 물성을 하나의 화면에 공존시킨다. 이는 단순한 재료 혼합이 아니다. 종이의 성질, 색의 무게, 시간의 층위를 끝까지 이해한 뒤에만 가능한 고난도의 회화 실험이다. 화선유채서화, 김나은의 방식 화선지는 흡수가 빠르고 섬세하다. 반면 유채는 본래 캔버스와 두꺼운 색층을 전제로 한다. 이 둘의 만남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김나은 작가는 그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표현의 에너지로 전환한다. 밑처리로 종이의 숨을 조절하고, 유분을 절제해 번짐을 통제하며, 붓질의 속도를 낮춰 색이 종이 속으로 ‘스며들도록’ 기다린다. 그 결과 화면에는 칠해진 색이 아니라 머문 색이 남는다. 판다, 현대의 민화가 되다 작품 속 판다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먹을 머금은 붓으로 그려진 눈동자에는 인간의 감정이 깃들고, 유채로 쌓아 올린 몸체에는 생명의 온기
K-컬처 강경희 기자 | 해마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한 글자를 떠올린다. 바로 ‘福복 이다. 그러나 이 글자를 단순한 행운의 기호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미 복의 절반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福은 우연이 아니다. 福은 기다림이 아니라 도래到來 이며, 정지된 상징이 아니라 움직이는 기운이다. K-민화 ‘福’자 안에 병오년의 붉은 말을 담아낸 이 작품은 그 오래된 진실을 다시 일깨운다. 복은 가만히 벽에 붙어 있는 글자가 아니라, 삶을 향해 힘차게 달려오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말은 예로부터 길조였다. 전쟁에서는 승전의 상징이었고, 평시에는 교류와 번영, 그리고 민간에서는 출세·속도·성취를 의미했다. 특히 병오년의 말은 ‘붉은 말’이다. 붉음은 불火의 기운이며, 정체를 허락하지 않는 추진력과 생명력의 색이다. 이 작품 속 말은단순히 福자를 장식하는 도상이 아니다. 福자의 구조 안에서 말은 몸을 일으키고, 시선을 앞으로 두며, 지체 없는 움직임을 준비한다. 이는 곧 이렇게 말한다. “복은 준비된 삶을 향해 먼저 움직인다.” 福자의 조형 또한 의미심장하다. 전통적으로 福은 ‘신에게 올리는 제사’와 ‘가득 찬 그릇’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는 그 글
K-컬처 이존영 기자 |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은 없다. 그러나 부모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아는 사회는 드물다. 핵가족화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효孝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말해지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늦게 준비되는 문제가 되었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 순간 우리는 어디에 모셔야 하는지, 어떤 예를 갖춰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지 몰라 감정부터 흔들린다. 이 혼란은 개인의 무지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가 이별을 준비하는 문화와 제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효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다. 어떻게 보내고, 그 마음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와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도에서 봉안, 위패, 반혼, 기제사, 49재, 천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종교적 의례를 넘어 상실을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문제는 이 흐름이 현대 사회에서 단절되거나 파편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이별 앞에서 과도한 죄책감과 미련을 안고 살아간다. 잘 보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붙잡지 않고 보내는 일은 차가움이 아니라 책임이다. 오히려 그것이 남은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이제 효를 개인의
K-컬처 강경희 기자 | 몽골 울란바토르 동쪽 초원, 천진벌덕(Цонжинболдог)이곳에 서면 한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한 문명의 시간 앞에 서게 된다. 바로 칭기스칸 은마동상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말 위의 칭기스칸은 멈춰 서 있지만, 그의 시선은 지금도 끝없는 초원을 가로지른다. 이 동상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다. 몽골인에게는 민족의 근원이며, 세계사에서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길로 엮어낸 거대한 흐름의 상징이다. 가을의 천진벌덕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 않고, 초원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말발굽 소리조차 부드럽게 삼킨다. 그 위에 선 은마동상은 제국의 ‘확장’을 말하는 듯하다. 정복과 이동, 길과 길의 만남. 가을의 색은 칭기스칸을 정복자로, 개척자로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겨울, 모든 것이 달라진다. 흰 눈이 초원을 덮고,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질 때, 은마동상은 침묵의 상징이 된다. 차가운 은빛 위에 내려앉은 눈은 화려함을 지우고, 남는 것은 결기와 고독이다. 이때의 칭기스칸은 정복자가 아니라, 혹독한 자연과 운명을 견뎌낸 ‘존재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가을과 겨울의 대비는 곧 몽골 역사 그 자체다. 풍요와 이동의 계절,